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이 시기에 퇴사를 앞두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퇴사를 앞두고 있자니, 마음이 여간 싱숭생숭한 게 아니다. 꽉 잡고 놓지 않으려 했던 일들이 손에서 하나씩 떠나갔다. 이제 내 일이 아닌 일로 다 만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내 일이 아닌 일이 내 일이라는 누군가의 외침을 듣게 되었다. 손놓았던 일들이 엄청난 탄성으로 저 멀리까지 갔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다. 나에게 올 때는 내 근처 어딘가에 걸려있었는지 팽팽했던 고무줄의 탄성처럼 철썩 소리를 내며 오는 것 같다. 망치로 맞은듯 웅장하고 깊은 타격감은 아니지만 괜히 따갑고 쓰린게 아주 볼썽사나울 정도로 얄밉다.
개발을 공부하고 업무에 활용하면서 즐거웠던 적이 참 많았다. 코드를 짜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괜찮은 퍼포먼스를 내는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굉장한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많은 일들 중에 내가 몇 달간 택해서 일한 회사 일이 적은 확률로 아닐 수도 있지만, 높은 확률로 맞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곁들여져서 매우 싫어졌다.
내가 웹 개발을 선택해서 공부한 그 시간을 업무에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결과를 기대하면서 탑을 쌓기만 했던 시간을 증명하는 느낌이었다. 노력을 하고 업무에 적용하면 괜찮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증명은 했다. 그치만 나는 만족할 수 없는 실력이다. 그런데도 만족할 수 없는 현재 내 실력을 누군가가 '잘'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치고 말았다.
정확히는 이런 감정이었다.
"나는 이 곳에 선생님으로 온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가르쳐줘야 하는거지? 그것도 윗사람에게? 차라리 내가 선생님이었다면 저사람을 가르치는 게 이상하지 않을텐데. 나는 가르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니까. 근데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
나는 누군가가 나를 테스트하는 일은 기분 나쁘지 않다. 객관적인 평가 척도로 내 실력를 가늠하는 것도 대체적으로 환영이다. 하지만 나의 수준을 저평가 하면서도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려는 못된 심보를 가진 대상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못된 심보를 가진 이에게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고른 뒤, 소리쳐주고 싶다.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하겠냐고.
왜 회사에서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냐고.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 부정맥인지 위염인지 화병의 증상인지 병명을 알 수 없는 증상이 자꾸 튀어나와서 나를 힘들게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