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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취
5월, 한라산 탐방기 본문
2023년 5월 29일 제주도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사실 일을 그만둘 때 제주도에서 개발 공부 겸 일을 병행하고 싶어서 일자리를 알아봤었는데, 내 개발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고, 결국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사실 여행지에서 놀고 먹는것도 좋지만,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 움직일때는 항상 이유가 존재해야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그렇기에 여행지에 가는 것에 쉼이라는 주제를 뒀다. 특히 육체적인 쉼 보다는 정신적인 쉼에 더 의미를 두었다. 이런 이유에서 정신적인 쉼을 위해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6월을 코앞에 둔 5월 마지막주는 기상현상이 변화무쌍했다. 그래서 2박 3일 잠깐의 여행동안 맑음, 비, 흐림, 안개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다채로운 하늘을 구경할 수도 있었지만 대체로 흐린 하늘 아래서 산에 오르게 되었다.
정신적인 쉼이 간절했기에 한라산 탐방로에서 잘 오를 수 있는 성판악 탐방로를 선택하였다. 탐방로를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정상에 오르는 것 하나만 생각하고 걷자고 계획했다. 혹시라도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여 준비는 했지만, 물과 간식은 생각에 잡음을 만드는 것 같아서 최대한 자제했다. 사실 물1병, 음료수 1병, 김밥 1줄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정도로 걷는 행위 자체에 집중했었다.
탐방 기록은 다음과 같다.
06시 04분 || 성판악 입구, 택시에서 하차
06시 15분 || 성판악 탐방안내소 입구 통과 시각으로 이 쯤이라고 봄.
07시 15분 || 속밭 대피소
08시 28분 || 진달래밭 대피소
08시 45분 || 해발 1500M
09시 02분 || 해발 1600M
09시 18분 || 해발 1700M
09시 36분 || 해발 1800M
09시 51분 || 해발 1900M
09시 59분 || 등정, 백록담
14시 01분 || 성판악 입구
탐방 소요 시간으로는 총 7시간 46분 정도 걸렸다. 확실히 하산할 때는 발에 무리가 가서 올라갈 때보다 천천히 내려오게 되어 발걸음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무조건 걷기를 결국엔 했다. 내리는 빗물들을 다 맞아서 비인지 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축축했지만, 이런 외부적인 영향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계속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과 걸으면서 갖고 있던 나쁜 기억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중요했다.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용서하려 나쁜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나쁜 기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산에서 잘 걷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1900M쯤 올라가니 고비가 찾아왔다. 더이상 아무생각이 들지도 않고, 다리도 움직여지지 않고 그냥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정상에 이르기 직전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 힘들어서 몇 걸음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고를 반복했을 때였다.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시원하게 축이신 것 같은 아저씨께서 무리와 하산하시면서 정상이 바로 앞이라고 화이팅하라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안개 때문에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알 수 없고, 내려갈 수도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순간에 뜻밖에 응원메시지를 듣게 되니, 참 행운이었다. 그래서 그 응원으로 정상까지 힘을 낼 수 있었다.
정상에 도착해서 백록담 인증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흔쾌히 찍어주셨던 남자분, 안개에 가려진 백록담과 함께 사진을 남겨주신 아저씨께도 정말 감사했다. 혼자 온 등산객에게 흔쾌히 호의를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미덕인가보다 싶었다.
내려올 때는 오를 때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다른 등산객 분들과 인사를 하기도 하고, 백록담은 봤는지, 정상은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산에 오를때는 나에게만 집중하다가 집중을 잠깐 멈추고 낯선 분들과 짧은 대화를 하니,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참 행복했다.
여행에 혼자 가서 모르는 분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도 정말 많은 분들과 함께 있다가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는 세상이 이런 것이라는 걸 마음 속 깊게 느끼고 온 여행이었다. 지금도 마음 한켠이 뜨끈하게 데워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짧은 여행동안 무탈하게, 소박했지만 그 어떤 것보다 알찬 행복을 경험한 시간이었다는 것에 감사함 뿐이다. 여행 중에 잠깐씩 마주쳤던 짧은 서운함들은 흙먼지 털듯이 쉽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결코 잊지 못할 5월일 거다.